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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과학자

양민수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학부생

1. 첫인상

나는 과학자라는 직업을 위인전을 통해 처음 접했다. 다양한 삶을 살았지만, 책 속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시대에서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설명하려 노력했다. 그 열정이 멋있었던 나는 학교 교과서에서 그들의 이름을 볼 때마다 오랜 지인을 본 것처럼 반갑게 느껴지곤 했다.

"과학자는 키가 작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멀리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 문장을 알게 된 후에, 난 과학자라는 직업에 일종의 경외심 또한 느끼게 되었다. 과학을 생각할 때마다 난쟁이들의 탑이 떠올랐다. 자신의 일생을 바쳐 무언가를 연구해, 다음 세대에게 더 높은 시야를 넘겨주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결심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어깨를 기꺼이 내줘 현재의 내가 보고 있는 교과서 속 지식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 상상이 내가 과학자라는 직업을 동경하도록 이끌었다.

사진 1 Brainbow1)

과학자를 진로로 결정했다 하지만, 내가 위인전을 통해 배운 과학자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몇 십년 동안 연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내가 그 오랜 시간을 쏟을 주제를 정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진로는 중학교 때 정했지만, 연구 분야는 매년마다 바뀌었다. 거대한 입자 가속기를 보고 입자물리학자가 되고 싶어 하다가, 미사일이 날아가는 걸 보면서 군수업체에서 일하고 싶다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이 사진을 과학 잡지에서 보게 되었다.

나에게 '사진 1'이 준 감상은 다음과 같다. 이토록 다채로운 세상이 내 머리 속에 있다는 것, 제각각 빛나고 있는 저 세포들이 내가 이 사진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 그럼에도 저 세포들이 어떤 방법으로 기억을 생성하고 목적에 따라 기억을 간직하거나 지울 수 있도록 동작하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는 것. 그 후 나는 뇌과학자가 되기로 마음을 정했다.

2. 시작

뇌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의지를 가지고, 나는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에 입학했다. 학교에 들어와 2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본 뇌과학은 나에게 거대한 바다 같았다. 멀리서 볼 때는 수평선 아래 바다가 가만히 멈춰있는 것처럼 보여, 바다가 어떤 모양인지 다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겨 파도 앞머리에 앉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왜 저 왼쪽 바다는 다른 곳보다 물빛이 한층 더 어두운지, 지금 이 파도에도 규칙이란 게 있는지, 저 수렁 근처는 유속이 배로 빠른지 모르는 것이 넘쳐난다. 뇌과학 또한 거대한 미지의 영역으로 교과서에 쓰여있는 일차적인 핵심 외에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따라서 나에게 2년은 지나친 자신감을 차츰 내려놓는 시간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 뇌에 대해 전부 알고 졸업하겠다는 목표도 점점 바뀌어갔다. 변화의 방향은 내 호기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졸업할 때가 되면 내가 어떤 질문의 답을 알고 싶은지, 어떤 방법을 통해 알고 싶은 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기를 원했다. 작다면 작지만 내게 무척 어려웠던 이 목표를 위해 나는 치우침 없이 다양한 과목들을 들으며, 현재 뇌를 어떻게 연구하는지 다양한 방향성과 초점들에 대해 배우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중 가능하다면 내 방법은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여러 시도들을 거친 후에 나는 내가 무엇에 가장 끌리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처음 뇌과학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이 기억을 형성하는 무수한 세포들의 사진이었던 것처럼, 나는 세포 단위에서 논리적 추론, 의사결정, 기억 등 다양한 뇌기능들이 어떤 동작 원리 하에 이루어지는지 알고 싶었다.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 (fMRI), 기능적 근적외선 분광분석법(fNIRS), 그리고 두개강내 뇌파검사(intracranial EEG) 등, 이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직접 각각의 세포들을 확인하는 방법에 몰입하게 되었다. 어떻게 신경세포가 주어진 자극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지 신경물리학에서 배운 내용을 컴퓨터 모델로 만들면서, 내가 뇌를 측정하는 분야가 아니라 가상의 뇌를 만들어내는 분야에 더 끌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작위로 연결된 신경세포들이 신경생물학적인 학습 규칙(Spike Timing Dependent Plasticity, STDP) 에 맞춰 단순한 패턴을 기억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난 내 뇌 안에서 지금 이 가상의 신경세포들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내 신경세포들을 상상하고 흐뭇해했다. 그때 나는 내가 연구를 시작해도 되겠다는 어렴풋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3. 결정

처음 연구를 시작한 나는 내가 연구자로서 배경 지식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다. 따라서 내가 어떤 주제에 가장 이끌리는지 결정하기 어려워했다. 그러나 뇌 안에 존재하는 것을 연구하고 싶다는 의욕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서 대안으로 인공지능 연구 속에 존재하는 개념을 뇌에서 구현 가능할 수 있는 모습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연구 주제를 차츰 다듬어갔다.

지도교수님이 나에게 주신 과제는 당시 갓 출간된 심층 강화 학습 논문에서 제시한 모델을 작동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구현해보는 것이었다. 해당 모델의 특이점은 사람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처럼 모델이 과제 학습 중 수집한 경험을 기반으로 현재 상대하고 있는 과제의 대략적인 설계도를 그린다는 것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과제의 규칙을 알아내, 보다 효율적으로 학습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논문의 주안점이었다.

사진 2 목표 강화학습 모델의 구조도2)

한 개념을 다른 무언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표현 방식에 대해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지식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다 생각했다. 이를 위해 나는 단계적인 논문 읽기를 시작했다. 먼저 한 분야에 호기심이 생겼다면, 그 분야에 대해 소개하고 여러 논문들이 다루는 문제의 핵심을 요약해 보여주는 리뷰 논문들을 읽는다. 각 리뷰 논문을 읽다가 흥미로운 결과나 이해가 가지 않는 개념을 다루고 있다면 출처를 표시해 두고, 표시해 둔 논문들을 읽으면서 해당 과정을 반복한다. 가지치기를 이어 가며, 논문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자, 왜 이 논문을 읽고 있는지 알기 쉽게 마인드맵으로 정리해 두었다. 그렇게 작년 여름방학 동안 논문 더미들과 먹고 자며 살았다. 그러면서 틈틈이 어떻게 하면 위 모델을 뇌 안에 형성 가능한 모습으로 만들 수 있을지 영감이 들 때 마다, 읽던 논문과 함께 기록해 두었다. 내 연구 습관은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한 것 같다.

내 연구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내가 설명하고 싶은 현상을 논리 단위로 쪼개 열거한다. 그 다음 논문 속 실험 결과나 수학 모델들이 전체 논리의 어떤 부분을 규명하려 했는지, 얼마나 해냈는지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그 후에, 내가 이 전체 논리가 올바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채워 넣어야 하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논리적 공백들을 채우기 위한 수학 식 또는 방법론을 알기 위해 다른 환경 속 유사한 문제를 해결하려 한 논문들을 찾아 읽으며 공부했다.

마지막으로 이 과정들을 통해 그려진 설계도를 실제 모델로 구현하면서, 되도록 참고한 모든 논문들의 주요 부분들을 충실히 따르는지 매번 확인했다. 또한 내 모델이 지나치게 단순하여 어떤 실험에 대해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그러면서 동시에 여러 현상에 대해 설명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적절한 복잡도를 유지하는지 검토하며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4. 현재

그렇게 나는 작년 한해 동안 뇌가 어떻게 과거의 경험을 시간의 흐름에 맞게 정리하고 기억하는지, 그리고 뇌가 어떻게 과거의 기억들을 자신이 현재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 맞게 해석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구체적으로 나는 기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뇌 영역인 해마가 어떻게 시공간 정보를 처리하는지, 그리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단순한 이진 분류기 집합이 현재의 심층 강화 학습 알고리즘들이 해결하기 어려워하는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의 예측 문제를 더욱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는 연구를 논문으로 발표했고, 학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그 계기로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된 내가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의 내가 처음 뇌과학자를 꿈꾸는 어린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다면 당부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항상 뒤를 돌아보며 앞의 수를 두어야 헷갈리지 않는다.
습관처럼 조급하게 생각하면서 후회하는 것은 좋지 않다.
궁금한 이유가 뒤따르면 답을 알아야 하는 좋은 호기심이다.

이 세 문장, 그리고 이 글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여기서 이만 마친다.

출처
  • 1)Cell Press: Brainbow

    Brainbow는 세포 염색 기술로, 인접한 세포들이 서로 다른 색으로 빛나도록 해, 개별 단위의 신경 세포를 보다 용이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진은 해당 기술을 활용하여 기억을 관장하는 뇌 영역인 해마 속 신경 세포 생성이 이루어지는 곳인 치상 이랑의 세포들을 촬영한 것이다.

  • 2)Simulated Policy Learning in Video Models

    Kaiser, Lukasz, et al. "Model-based reinforcement learning for atari."
    arXiv preprint arXiv:1903.00374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