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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FOR YOU(vol.06) - 문화와 예술, 그 너머의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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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ROAD.2

문화와 예술, 그 너머의 수학

문태선 광저우 한국학교 교사, 작가

여행의 이유

한때, 수학을 전공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 '나는 왜 하필 이렇게 어려운 과목을 선택했을까.', '왜 하필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과목을 전공했을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고 오래도록 방황했었다. 교직을 그만둘 수 없다면 스스로 그 이유와 목적을 찾아야 했기에 대학원을 진학했고, 그 후로 답을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교사로서 내 인생에는 수많은 변곡점들이 있었다. 대학원 진학을 시작으로 ICME12 문화특별위원 활동, 영국 런던으로의 파견, 베트남 호찌민과 중국 광저우, 그리고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의 초빙 생활 등. 남들은 겨우 한두 개 해볼까 말까 한 경험을 참 많이도 했다. 수학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시작한 나의 여행은 이제 그 자체로 나의 삶의 여정이 되었다.

수학의 이유

퍽 다행스럽게도 길고 긴 여행을 통해 나만의 답을 찾은 것 같다. 수학이 왜 필요한지, 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이다.

'이면'을 보는 '눈'

바로 이것을 길러주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왜 이면을 보아야 하는가? 어떤 현상 속에 감춰진 수학을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텐데. 휴대 전화의 구조나 원리를 몰라도 사용하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듯이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 손에 들려 있는 휴대 전화가 언제부터, 어떻게, 누구에 의해 진화되었는지를. 스티브 잡스 같은 거물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수많은 이들이 휴대 전화의 발전에 기여했다. 당연하게도 그들 모두는 휴대 전화의 구조와 원리에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이면을 깊이 연구하는 이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전문가'라고 부른다. 세상은 그런 '전문가'들에 의해 진화하고 발전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는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마음의 자세는 언제나 필요하다.

물론 어떤 현상의 수학적 이면을 모든 사람이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 휴대 전화의 구조와 원리를 모두가 알고 쓰는 것은 아닌 것처럼. 다만, 수학적 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은 남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자연과 건축, 미술, 음악과 같은 인류의 문화유산에 공통으로 스며 있는 질서와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세상과 문화에 대한 다른 시각, 다른 해석은 삶을 더욱 풍성하고 색감 있게 만든다.

수학적 안목의 필요성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이유를 하나 더 덧붙이고 싶다. 우리 생활 전반을 돌아봤을 때, 금융, 의료, 정보, 보안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수학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예를 들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사용되는 RSA 암호 시스템에서는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해 더 큰 소수의 발견이 필요하다. 또한 유투브나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의 경우에도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빅데이터에 기반한 통계를 활용하고 있다.

인류가 발전할수록 수학의 역할은 더 커지고 중요해진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미래에 하고자 하는 일,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분야가 무엇이건 간에 수학과의 관련성을 피해 가긴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 5G의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을 이해하고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도, 어느 분야든 자기 몫의 일을 '전문가'답게 해나가기 위해서도,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시각으로 세상을 돌아보기 위해서도 수학적인 안목은 필요해 보인다.

문화와 예술, 그 너머의 수학

일전에 <멜랑꼴리아>라는 드라마를 애청한 적이 있다. 수학 천재와 그를 가르친 수학 교사가 특혜 비리의 온상인 한 사립고의 비리를 파헤친다는 내용이었다. 수학을 소재로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것이 신선하긴 했지만, 그것이 드라마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아니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나 줄거리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수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공감하지 못했을 대화들. 그리고 주인공인 수학 천재 백승유가 찍었던 사진의 스폿들. 그런 것들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옥의 기와, 창살과 바닥의 테셀레이션 무늬, 나뭇잎과 솔방울의 나선 같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세상에 나 말고 또 있구나 싶어서 격하게 반가웠다. 또, 빛나는 서울의 야경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수많은 곡선과 함수식들 역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세상을 수학의 눈으로 바라보면 저런 장면들이 펼쳐진다는 걸 드라마를 통해 많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갈릴레이의 말처럼 신이 세상을 수학이라는 언어로 창조했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과 현상은 수학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수학 천재 백승유의 시선이 그랬던 것처럼.

뜬금없이 드라마 얘기를 한 이유는 나의 시각 역시 드라마의 주인공과 같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수학을 통해 보고 싶었던 것도 다름 아닌 문화와 예술이었으니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문화와 예술 속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보고 싶었다. '무작위 속의 작위', '무질서 속의 질서' 그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아름다움'. 어쩌면 그것이 예술과 수학의 공통인수가 아닐까.

스페인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

서두가 길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경험이 중요한 법! 이제 본격적으로 문화와 예술 속에서 수학을 찾는 여행을 시작해보자.

수학을 테마로 떠날 수 있는 곳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의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은 바로 스페인 그라나다(Granada)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이다. 이곳은 수많은 예술가와 건축가들에게 큰 영향과 영감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는 알람브라 궁전을 방문해 이슬람식 건축 양식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기독교 건축 양식과 혼합해 무데하르(Mudejar)라는 독특한 스페인만의 건축 양식을 만들어 냈다.

또한 스페인의 기타 연주자 타레가(Francisco Tarrega)는 이 궁전에서 실연의 아픔을 담은 명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한때 동일한 이름의 드라마가 한국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는데, 드라마 속에서 자주 들리던 기타 연주가 바로 타레가의 곡이다. 잘게 떨리는 트레몰로 기법으로 연주되는 기타 연주를 듣다 보면 고요한 궁전의 연못을 바라보며 한없이 슬퍼했을 타레가의 애잔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곧 소개될 네덜란드의 판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우스 에셔(M.C.Escher)도 알람브라 궁전을 두 차례(1922년과 1936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이곳에서 무어인들의 기하학 패턴을 따라 그리며 자신만의 평면 테셀레이션을 창조하기 위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비, 도마뱀, 새 등으로 이루어진 평면 테셀레이션의 탄생이 바로 이곳, 알람브라 궁전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사실은 수학자들 역시 이곳을 일종의 성지 순례처럼 다녀간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이 산티아고를 걷고, 티베트 사람들이 라싸와 카일라스산을 다녀오는 것이 평생의 꿈이듯이 수학자들도 일생에 한 번쯤 알람브라 궁전을 다녀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예술가들처럼 영감을 받으러 오는 것은 분명 아닐 텐데, 수학자들은 왜 알람브라 궁전에 오고 싶어 하는 걸까?

알람브라 궁전 전경
알람브라 궁전 내부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당연히 가봐야겠지만 아쉬운 대로 사진을 보자. 그냥 사진만 봐도 설레지 않은가? 높은 산 위에 요새처럼 지어진 이 궁전은 이베리아반도를 이슬람 세력이 통치하던 13세기에 나스르 왕조에 의해 지어지기 시작했다. 약 100년에 걸쳐 화려하게 건설된 알람브라 궁전은 1492년에 일어난 국토회복운동(기독교 세력이 원래의 영토를 되찾고자 일으킨 운동)으로 함락될 위기에 놓였지만 빼어난 아름다움 덕분에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무어인(이슬람교도)들의 최고의 예술이라고도 불리는 알람브라 궁전은 '대칭의 궁전'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그 이름에 걸맞게 정원과 연못, 건물의 면면에 대칭이 스며 있고, 벽과 기둥, 천장과 바닥을 수놓는 기하학 패턴 장식 역시 극도의 세련미를 자랑한다. 나스르의 마지막 왕조는 기독교 세력에게 밀려 도망치듯 북아프리카로 떠나며 '영토를 빼앗기는 것보다 이 궁전을 떠나야 하는 것이 더 슬프구나'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존재 자체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곳. 아직까지 나의 버킷리스트에 고이 담겨 있는 이곳을 언젠가 방문하게 되는 날. 내 귀에는 타레가의 기타 선율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을 것이다. 두 발은 최대한 천천히 알람브라의 패턴 바닥을 디딜 것이고, 동시에 두 눈은 궁전 곳곳을 빈틈없이 수놓고 있는 화려한 패턴을 따라다니고 있을 것이다. 모든 패턴을 카메라에 담겠다는 굳은 의지를 담아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가면서...

다른 문양, 같은 구조

알람브라 궁전에 있는 패턴을 전부 사진으로 찍는다면 과연 몇 장이나 될까? 궁전의 규모와 화려함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실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아래 사진에서처럼 벽면 하나에 3~4가지의 패턴이 있다고 생각하면, 하나하나의 패턴을 사진으로 찍었을 때 못해도 족히 100장은 나오지 않을까?

알람브라 궁전 내부의 기하학 패턴들

중요한 것은 만약 서로 다른 문양의 사진을 17장보다 많이 찍었다면 그중에는 '수학적으로 같은 구조'를 갖는 패턴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2차원 벽지 문양(평면 테셀레이션)은 그 종류가 아무리 많아 보여도 결국에는 17가지 벽지군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문양은 다르지만, 수학적으로 같은 구조를 갖는 패턴'

수학자들이 알람브라 궁전을 방문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과연 이 화려한 패턴의 왕궁에 17가지 종류의 벽지 문양이 정말로 모두 존재하는지,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카드 맞추기처럼 같은 구조를 가진 패턴을 17가지로 분류해 내는 그 작업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모양이다. 수많은 수학자들이 다녀갔고 여러 논문들이 제시되었지만 알람브라 궁전에 17가지 종류의 벽지 문양이 정말 모두 존재하는지는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17가지 종류의 벽지 문양

벽지 문양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결정학자들이 정리해 놓은 아래 도식을 연구해보는 것이 좋겠다. 평행이동의 기본 단위가 되는 유닛(unit)을 찾고, 그 속에 어떤 대칭이 있는지를 찾아 분류하면 아래와 같이 모두 17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이때 대칭은 거울 반사(mirror reflection)와 미끄럼 반사(glide reflection), 그리고 4가지 유형의 회전(2fold-180°, 3fold-120°, 4fold-90°, 6fold-60°)으로 구성된다. 벽지 문양의 종류가 왜 17가지 종류밖에 없는지를 증명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도식을 이해하기만 한다면, 어떤 문양이 주어졌을 때 그 문양이 17가지 종류 중 어디에 속하는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리서치게이트(https://www.researchgate.net/)

벽지 문양 분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다음은 올해 2월에 북경의 유명한 정원인 예원(豫园)을 방문하여 찍은 창살 문양 사진이다.

이 문양의 기본 유닛(평행이동의 기본 단위)은 사진에 표시된 파란색 평행사변형이다. 그리고 평행사변형 안의 구조를 살펴보면 대각선과 수직 방향으로 거울 대칭이 존재한다. 또한, 여러 종류의 회전(30°, 120°, 180°) 대칭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구조를 가진 벽지 문양은 p6m(p6mm)으로 분류된다. 예시를 보니 한 번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에셔(M.C.Escher)의 테셀레이션 판화

출처: Math & the Art 0f MC Escher(https://mathstat.slu.edu/escher)

1900년대 초반에도 알람브라 궁전은 지금처럼 유명한 관광지였나부다. 지금부터 소개할 네덜란드의 판화가 에셔도 알람브라 궁전을 두 번이나 방문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내와 함께 바닥에 앉아 벽에 새겨진 여러 가지 패턴들을 스케치북에 그려서 돌아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지금처럼 인파로 북적이진 않았던 모양이다. 아름다운 궁전 한 귀퉁이에 앉아 드로잉을 하는 기분은 어떤 걸까? 생각만으로도 평화롭고 황홀하다.

그는 어려서부터 평면을 채우는 다양한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식사 시간에도 '어떻게 하면 식빵 위를 주어진 치즈로 빈틈없이 메꿀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이 된다. 이후로도 평면을 규칙적으로 채우기 위한 고민은 계속되었던 듯하다. 테셀레이션(tessellation)이 무엇인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를 배운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생 시절에 '8개의 머리(Eight Heads)'라는 작품을 스스로 만들어 내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Eight Heads (1922) (출처: wikiart.org)

평면 채우기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그에게 알람브라 궁전의 방문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궁전 내부의 화려한 장식들이 온통 그의 관심 소재이니 말이다(실제로 처음에는 궁전 안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방문했다고 한다). 알람브라 궁전 방문으로 에셔의 예술가로서의 인생은 크게 바뀌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방문 이후에는 그만의 세계관이 담긴 평면 테셀레이션 작업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한다. 딱딱한 직선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들고, 그 사이 사이에 새와 도마뱀, 물고기 같은 생명체들을 탄생시키는 작업을 말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는 지독히도 외롭고 괴로운 시간이었을 테니까. 하나의 형상과 그 반대되는 형상이 툭툭 튀어나오는 미치도록 짜릿한 경험을 하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지 못하는 고독함. 평면의 규칙적인 분할이라는 화려한 정원을 혼자 걷고 있는 듯한 그 기분, 고통과 환희의 교차를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재미있는 사실은 에셔 작품의 가치를 먼저 알아본 사람들이 다름 아닌 수학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에셔는 학창 시절에 수학을 싫어했고 잘하지 못했다. 이후로도 그는 수학을 따로 배운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는 심오한 수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알람브라 궁전의 패턴에서와 같은 대칭의 원리가 다양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림12알람브라 궁전의 기둥 장식
그림13에셔의 판화 작품
알람브라 궁전의 패턴과 에셔의 테셀레이션 (출처: Math & the Art 0f MC Escher)

위의 예를 보자. [그림12]는 알람브라 궁전의 기둥 장식이고 [그림13]은 에셔의 판화 작품이다. 기하학 패턴과 테셀레이션은 분명 다른 문양이지만 수학적으로 같은 구조를 갖는다. 앞서 말했듯 에셔의 형상화된 테셀레이션 작품들은 알람브라 궁전의 문양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다시 던져볼 수 있겠다. 과연 에셔의 작품 속에도 17가지 종류의 벽지군이 모두 존재할까?

2013년도에 영재교육원에서 했던 에셔의 테셀레이션 수업

나와 에셔의 인연은 참으로 오래되었다. 10여 년 전 우연히 보게 된 에셔의 테셀레이션 작품 <천사와 악마(angels and devils)>. 그 작품을 시작으로 나는 그의 테셀레이션 작품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의 테셀레이션을 이해하기 위해 17종류의 벽지군을 연구하게 되었고, 그러다 한국의 전통 문양 속에서도 벽지 문양을 찾겠다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더욱이 학생들과 에셔의 테셀레이션 수업을 할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창의적인 작품들을 보며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광저우 한국학교에 그려진 에셔의 '새' 벽화

참 멋지지 않은가? 우상숭배와 형상화된 예술을 금지한 이슬람이라는 종교, 그 종교가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 알람브라 궁전, 그 궁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에셔의 테셀레이션 작품, 에셔의 작품을 모티브로 다시 만들어지는 수학 수업, 그리고 그런 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만들어 나갈 더 창의적이고 멋진 미래 세상으로의 진화가 말이다.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수학을 선택한 것은 퍽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었다. 일상 속에서든 여행 속에서든 보려는 마음을 갖고 눈을 크게 뜨기만 하면 무엇이든 그 안에 숨어 있는 수학적 원리를 찾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수학을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공부하면, 조금만 더 많이 알면 세상을 이렇게 멋진 수학의 언어로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수학교사로서 나의 소망은 단순하다. 세상의 이면을 볼 수 있도록 '수학의 눈'을 길러주는 것. 그것을 위해 나는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한다. 나의 견문을 넓혀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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