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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FOR YOU(vol.10) - 미래 과학자를 만드는 연구훈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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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PLUS.1 지정주제형 지도교수 수기

미래 과학자를 만드는 연구훈련소
- 4년간의 R&E 지도 수기

손장엽 책임연구원(한국과학기술연구원)

과학영재 창의연구(R&E) 프로그램의 평가위원이자 자문교수로 참여해 온 시간은 단순히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을 넘어 나 자신에게도 큰 배움과 성찰의 시간이었다. 2022년을 시작으로 2025년까지 총 4개의 팀을 만났는데, 처음 이 역할을 맡게 되었을 때만 해도 고등학생들의 연구 수준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 또 짧은 기간 안에 얼마나 깊이 있는 탐구가 가능할지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이러한 걱정은 완전히 기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학생들의 질문 수준이었다.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고 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는 모습은 연구자로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때로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차례 실험을 반복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과학자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장면들을 보며 과학적 호기심은 지적 수준이나 경험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또한 R&E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보여 준 변화는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다소 소극적이고 막막해 보이던 학생들이, 몇 달이 지나 최종 발표를 준비할 무렵에는 스스로의 연구를 자신 있게 설명하고, 질문에 논리적으로 답변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학생들이 한 단계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연구자로서의 보람과는 또 다른 종류의 기쁨이었다. 어쩌면 내가 학생들을 지도했다기보다, 학생들의 성장을 통해 나 역시 함께 배우고 성장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R&E 프로그램을 지도하면서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이었다. 방학 기간을 이용해 주말임에도 내가 속한 연구소에 방문하여 나와 과제를 수행하였고, 늦은 밤까지 온라인으로 토론을 이어 가며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습은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다. 지도하는 입장이었지만 오히려 학생들에게 배우는 순간도 많았으니, 반대로 학생들이 나에게 좋은 지도자가 되어 준 셈이다. 돌이켜보니 연구자로서의 초심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준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그림1 이차원소재 그래핀을 전정기를 이용해 박리하는 실험. 모든 실험을 학생들이 직접 설계하고 수행하였다.

본 R&E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은 학생들이 단순히 교과서 속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실제 연구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수업에서는 정해진 실험 방법과 이미 알려진 이론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지만, 본 프로그램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연구 주제를 정하고,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해석하며, 결론을 도출하는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비판적 사고력, 문제 해결 능력, 협업 능력, 그리고 과학적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게 된다. 이는 교실 안에서는 결코 충분히 얻기 어려운 값진 경험일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발전한 인공지능(AI) 기술은 과학 연구의 방식 자체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실험 결과를 예측하며,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데 AI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과학자는 단순히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창의적으로 활용하고, 복잡한 문제를 융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면에서 R&E 프로그램은 AI 시대를 살아갈 미래형 과학자를 길러내는 데 최적화된 교육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림2 KIST 전북 복합소재연구소에 R&E 프로그램 참여 학생들이 방문하여 연구를 체험하고 연구소를 견학하는 시간을 가졌다.

실제로 학생들은 연구 과정에서 다양한 디지털 도구와 분석 프로그램을 활용하며, 데이터 처리와 해석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팀은 실험 데이터를 엑셀이나 파이썬을 이용해 분석하였고, 또 어떤 팀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활용해 이론 모델을 검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과학 실험을 넘어, AI 시대에 요구되는 데이터 기반 사고방식을 익히는 중요한 훈련 과정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자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미래의 과학자는 실험실 안에서만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를 다루고 해석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점을 늘 강조하였는데, 학생들이 나의 메세지를 잘 기억해 주길 바랄뿐이다.

그림3 수전해 장치를 학생들이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는 사진. 본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동안 실험에 필요한 모든 설비는 참여 학생들이 스스로 제작하였다.

또한 R&E 활동은 학생들에게 실패의 가치를 가르쳐 주는 매우 훌륭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학생들이 처음에는 실험이 한 번에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제 연구 과정은 예상치 못한 변수와 오류의 연속이었다. 장비가 없거나 그나마 보유하고 있던 장비가 고장 나기도 하였고, 기대했던 결과가 전혀 나오지 않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가설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뒤늦게 발견하기도 하였다 (최종보고서 준비 중에 발견하여 밤 늦게 카톡으로 학생들과 긴급회의를 하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경험들이 학생들을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만든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고 강하게 믿는다. 실패를 통해 원인을 분석하고 다시 계획을 수정하며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연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림4 카본나노튜브(CNT) 필름 제조 사진. CNT 분산액을 필터에 통과시켜 학생들이 직접 CNT 필름을 제작하였다.

자문교수로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역할은 정답을 알려 주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질문을 가져오면 곧바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추가적인 질문을 던지려 노력하였다. 때로는 일부러 어려운 과제를 던져 주기도 했고 (아니, 4팀 모두 일부러 어려운 과제를 주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지도하는 대학원생들도 어려워하는 주제들이었고, 고생했을 학생들에게 이 수기를 통해 비로소 고개숙여 미안함을 표한다), 학생들이 직접 논문을 찾아 읽고 토론하도록 유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스스로 성장하는 방법을 배워 가는 모습이 보였고, 지도하는 입장에서 너무 보람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좋은 과학적 산출물 결과로 이어졌다면 금상첨화였겠으나, 나는 내가 지도한 학생들이 고민과 실패를 통해 더욱 성장하고 단단해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림5 CNT의 표면 습윤성 및 농도 구배를 이용하여 CNT 표면에 달라붙는 대기 중 수분의 양이 차이가 있도록 학생들이 직접 설계한 모식도.

지난 4년간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나는 매년 새로운 감동과 즐거움을 경험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레인다. 각 팀마다 연구 주제도 달랐고, 학생들의 성향과 접근 방식도 모두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학생들의 탐구 즐거움이었다. R&E 프로그램은 단순히 한 편의 최종보고서를 만들어 내는 활동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연구자의 삶을 미리 경험하게 해 주는 일종의 작은 연구 훈련소와도 같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과학이 얼마나 흥미로운 학문인지, 또 동시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끈기를 요구하는 분야인지 몸소 깨닫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이들이 어떤 진로를 선택하든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이 프로그램이 가진 진정한 가치는 결과물보다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실험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당황하던 순간, 예상치 못한 데이터 앞에서 고민하던 밤들, 조원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며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던 시간들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게는 잊지 못할 성장의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나 역시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 속에서 연구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확장하도록 돕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할 것이고, 과학기술이 사회 전반을 더욱 깊이 바꾸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정해진 길만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R&E 프로그램은 바로 그러한 인재를 길러내는 첫걸음이자, 학생들이 과학자로서의 꿈을 구체화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지난 몇 년간 만났던 학생들 중 누군가는 훗날 훌륭한 연구자가 되고, 또 누군가는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게 될 것이다. 어떤 길을 가든, 이 프로그램에서의 경험이 그들의 삶에 작은 불씨가 되어 오래도록 빛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문교수로서 보낸 시간은 나에게도 큰 선물이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고민하며, 때로는 실패를 웃으며 받아들이던 순간들은 연구자로서의 일상 속에서 얻기 힘든 따뜻한 추억이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더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그들의 가능성을 응원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고 싶다. 과학을 향한 순수한 호기심과 도전 정신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한, R&E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수많은 미래의 과학자들에게 든든한 발판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만났던 이 학생들 중 누군가가 훌쩍 성장한 과학자가 되어 새로운 연구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 날을 조용히 기다려 본다. 그날이 온다면, 나는 오늘의 이 시간들을 가장 먼저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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