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바로가기 본문 내용 바로가기

R&E FOR YOU(vol.08) - 문명의 두 번째 퀀텀 점프

과학영재창의연구지원센터 홈페이지로 이동
전체 메뉴 닫기

본문

특별기고

문명의 두 번째 퀀텀 점프

이순칠 명예교수(KAIST 물리학과)

양자물리 덕분에 인류 문명에는 퀀텀 점프가 일어났다. 퀀텀이란 바로 우리가 양자로 번역해서 쓰고 있는 단어로서, 원래는 단위라는 뜻이라고 한다. 원자가 존재하는 미시세계에서는 물리량들이 연속적으로 변하지 않고 하나, 둘, 이런 식으로 셀 수 있도록 불연속적으로 변하기에 이 세계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에 양자물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점프라는 단어 자체가 불연속적으로 변화한다는 의미이므로 비슷한 의미의 퀀텀이 강조어로 붙은 셈이다.

양자물리가 물리학에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양자물리 이전과 이후의 물리학은 완전히 다르다. 그 전의 물리학은 듣고 잘 생각해 보면 직관적으로 이해됐었는데, 양자물리는 아무리 잘 생각해도 직관적인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빅뱅 이론의 초기 성립에 기여가 큰 조지 가모브는 양자물리가 확립되던 시절에 관한 책을 썼는데, 그 책의 제목이 '물리학을 뒤흔든 30년'이다. 그 당시에는 모든 물리학자가 비록 양자물리를 연구하고 있지 않았더라도 새로운 발견과 진리의 탄생을 경외와 흥분을 가지고 지켜보았을 것이다.

양자물리는 물리학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현대의 화학실험실은 각종 분석기기로 가득 차 있다. NMR1), X-ray 분광기 등의 기기들은 모두 양자물리 덕분에 탄생한 것이다. 양자물리가 없었다면 화학실험실은 하얀 가운을 입은 곱슬머리 아저씨가 한 손에는 빨간 액체가 든 플라스크를, 다른 한 손에는 파란 액체가 든 플라스크를 들고 비커에 함께 부으면 하얀 연기가 나는 실험을 하는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DNA, RNA의 구조도 양자물리 덕분에 발견되었으므로 현대 생명과학도 양자물리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자연과학이 양자물리에 의해 퀀텀 점프를 했다면 과학에 기반을 두고 발전하는 공학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재료공학이나 전자공학 같은 학문이 그렇다. 반도체는 양자물리 없이 그 성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반도체로 만들어진 트랜지스터와 레이저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물체로서, 전자공학의 두 축을 이루는 소자이다. 우리는 주변에 온갖 전자기기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백 년 전에도 존재하던 것 빼고는 모두 양자물리 덕분에 발명되었거나 개선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명의 퀀텀 점프는 양자물리가 1900년 태동하고 나서 30년간 형태를 갖추고 나자 일어난 일이다. 이러한 첫 번째 퀀텀 점프 과정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던 양자물리의 성질이 하나 있었는데, 그 성질을 이용해서 양자정보기술이라 불리는 새로운 기술이 1990년대부터 발전해 왔다. 이 기술이 나온 지 약 30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양자기술에 의한 문명의 두 번째 퀀텀 점프를 목격할 시점에 와있다. 이 두 번째 퀀텀 점프는 고전컴퓨터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순식간에 해내는 양자컴퓨터, 도청 불가능한 통신, 순간이동 같은 양자기술들이 만들어 낼 것이다. 이 기술은 모든 산업과 개인에게 기회와 동시에 위기를 가져다줄 것이다. 모든 암호를 깰 수 있다는 양자컴퓨터를 제일 먼저 갖게 되는 사람은 전 세계은행의 계좌를 모두 해킹할 수 있으므로 막말로 기회를 얻게 될 것이고 당하는 사람에게는 위기가 될 것이다.

양자컴퓨터의 영어 해설을 보면 disruptive technology라는 말이 종종 발견된다. disruptive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처음에 '지장을 주는'이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양자컴퓨터가 지장을 주는 기술이다? 이 단어의 다른 뜻들을 좀 더 찾아보면 '파괴적인', '혁신적인'이라는 표현들이 나타나는데, 그러면 비로소 이 말이 이해된다. 양자컴퓨터는 혁신적인 기술이라는 뜻일 것이다. '혁신적인'이라는 뜻으로 evolutionary 같은 단어를 쓰지 않고 disruptive라는 단어를 쓴 것은 양자컴퓨터가 기존 사회의 문명을 모조리 해체하고 새롭게 창조할 기술이라는 뜻일 것이다.

양자컴퓨터는 빠르게 계산한다. 하지만 양자컴퓨터가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계산이 빠르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고전컴퓨터로 어떤 계산을 하는데 우주의 나이인 135억 년이 걸린다고 하면 현실적으로 풀기 불가능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계산을 양자컴퓨터가 1년 이내에 한다면 풀기가 불가능했던 문제를 풀었다고 할 수 있다. 인류가 해결할 수 없었던 난제들, 예를 들어 암 정복, 노화 역전과 불멸, 우주의 비밀 등을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생산 효율을 퀀텀 점프시켜 산업의 구조를 바꾸고 재난을 예보하는 등 많은 난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양자컴퓨터가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이유는 병렬처리를 잘하기 때문이다. 병렬처리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백 명 학생의 성적 평균을 내려면 우선 다 더해야 하는데, 나 혼자 더하는 것보다는 조교 네 명과 같이 20명씩 나누어 더한 후 마지막에 5개의 숫자 한 번만 더 더하면 거의 5배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요즘 AI의 열풍에 따라 그래픽처리장치인 GPU가 엄청난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GPU가 병렬처리로 AI의 기계학습을 빠르게 해주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가 병렬처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양자 세계에서 중첩현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전컴퓨터에서는 0과 1을 나타내기 위해서 전압이 0볼트인 상태와 5볼트인 상태를 사용한다. 양자컴퓨터도 마찬가지로 이진법을 사용하며 0과 1을 나타내기 위해 두 가지 상태를 사용해야 하는데, 양자 세계의 물체들이 가진 고유한 상태들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수소 원자의 에너지 바닥 상태와 첫 번째 들뜬 상태를 0과 1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 고전컴퓨터와 양자컴퓨터의 주된 차이는 양자컴퓨터에서는 0과 1을 나타내는 상태들이 중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첩이란 파동에서 쓰는 용어로서 어려운 뜻이 아니고 여러 파동이 합쳐지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가 피아노에서 도미솔을 한꺼번에 치면 아름다운 화음이 들린다. 이런 현상을 전문용어로 표현하면 '도, 미, 솔, 세 소리 파동이 중첩되었다'라고 한다. 빨강, 노랑, 파랑, 세 빛을 합하면 하얀빛이 되는데, 이때도 빨간빛 파동, 노란빛 파동, 파란빛 파동이 중첩되었다고 표현한다.

양자컴퓨터

양자물리는 우리가 입자라고 생각하는 전자, 원자 같은 물체들이 파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파동이라고 생각한 빛이 입자의 성질을 가지고 있음이 실험적으로 관측되며 시작되었다. 입자들이 파동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입자들의 상태도 중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입자가 여기에 있는 상태와 저기에 있는 상태가 중첩되었다든지, 입자의 에너지가 바닥인 상태와 들뜬 상태가 중첩되었다는지 하는 식이다. 중첩 상태에 물리적 조작을 가하면 양자세계의 선형성에 의해서 개개의 상태에 동시에 작용한다. 0과 1을 나타내는 중첩 상태에 연산을 구현하는 물리적 조작을 가하면 0과 1에 동시에 병렬로 연산이 되는 것이다.

고전 컴퓨터도 할 수 있는 병렬처리라면 양자컴퓨터가 병렬처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고전컴퓨터는 두 배 빠르게 병렬처리를 하려면 CPU 같은 처리장치가 두 개 있어야 하고, 천배 빠르게 계산하려면 천 개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N 비트의 양자 CPU를 가진 양자컴퓨터는 2N 배의 병렬처리를 할 수 있다. 10비트 양자컴퓨터는 천배의 병렬처리를 할 수 있으며, 20비트면 백만 배, 그리고 40비트면 1조 배 빠르게 계산한다. 이 정도의 병렬처리만 해도 고전컴퓨터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터인데, 양자컴퓨터는 비트 수가 수백 개인 것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함수 f(x)가 0이 되는 x값을 찾으려고 한다고 하자. 문제를 푸는 것은 어렵지만 주어진 답이 정답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는 쉽다. 이 문제를 고전컴퓨터에게 풀라고 명령하면 지능이 없는 컴퓨터는 답을 하나 가정해서 정답인지 아닌지 확인한다. 우연히 정답을 찾았으면 좋고, 아니면 다른 답을 또 하나 가정해서 정답인지를 확인한다. 이런 과정을 정답을 찾아낼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컴퓨터가 문제를 푸는 방식이다. 즉 컴퓨터는 우선 x값으로 0을 넣어서 함숫값이 0이 되는지 확인한다. 함숫값이 0이 되면 답을 찾았으니 됐고, 아니라면 값을 하나 올려서 x에 1을 넣고 다시 함숫값을 확인한다. 이런 과정을 답이 나올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가능한 모든 값을 중첩해서 한꺼번에 병렬로 계산한다. 그러면 답이 되는 숫자 하나만 톡 튀어나오게 되어 있다. 이런 환상적인 일을 벌이는 알고리듬을 짜는 일도, 그 알고리듬을 수행하는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일도 전혀 쉽지 않다. 그러나 인류는 이런 어려운 일을 해냈으며 이런 연산은 이미 실험실에서 실증되었다.

병렬처리가 효율적인 대표적인 양자 알고리듬으로 데이터 검색 알고리듬과 소인수분해 알고리듬을 꼽을 수 있다. 무작위로 배열된 N개의 데이터 중에서 한 개를 찾는다고 할 때 고전적인 방법으로는 N개 모두를 뒤져볼 수밖에는 없다. 그런데 양자 데이터 검색 알고리듬은 루트 N번 만에 찾아낼 수 있다. 병렬처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웹 사이트에 처음 가입하려 하면 '대문자, 소문자, 특수문자, 숫자 모두 써서 8자 이상으로 암호를 만드시오'라고 요구해서 우리를 짜증 나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는 256이며 약 7×1016, 즉 7경 개 정도 된다. 암호를 모르면서 이 사이트를 해킹하려면 무작위로 아무 숫자나 넣어볼 수밖에는 없다. 1초에 백만 개씩 시도한다고 하면 고전적인 방법으로는 약 2000년이 걸리는데, 양자 알고리듬을 양자컴퓨터에서 수행하면 약 4분 정도 걸린다. 내 계좌를 누군가가 해킹하려고 하는데 2천 년이 걸린다고 하면 별걱정이 되지 않겠지만 4분이라고 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데이터 검색은 암호 격파만이 아니라 매우 광범위하게 쓰일 수 있다. 이젠 익숙해져 있지만 처음 유튜브가 우리에게 좋아할 만한 음악이나 동영상을 추천할 때 꽤 놀랐었다. 스마트폰이 사진이 찍힌 위치나 건물 이름을 알려줄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기능은 단순히 데이터를 찾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데이터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야 하는 것이므로 단순 검색보다 훨씬 더 데이터를 많이 분석해야 할 것이다.

데이터의 연관성을 찾는 대표적인 예는 인공지능이다. 2022년 말 챗지피티가 처음 나왔을 때 전 세계가 그 지능에 놀랐는데, 사실 그 버전의 챗지피티는 몇 년 전부터 있었으나 처음 나왔을 때는 단지 몇백만 개의 데이터만 학습했더니 별거 없었다가 몇십억 개의 데이터를 학습시켰더니 그렇게 놀랍게 똑똑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은 학습을 많이 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데이터를 하나씩 순서대로 학습하려면 시간이 많이 들지만, 데이터를 중첩해 한꺼번에 양자 인공지능에 넣으면 순식간에 학습할 수 있다.

그래서 양자컴퓨터로 최근 많이 연구되는 또 하나의 주제는 바로 인공지능이다. 양자컴퓨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인공지능의 학습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한가지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데이터를 중첩해 한꺼번에 학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의 계산과정을 빠르게 하는 것으로서 기계학습에 나오는 행렬 계산을 병렬로 처리하여 빠르게 한다. 우리는 앞으로 양자 인공지능 때문에, 챗지피티에게 놀랐던 것보다 더 놀라운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지금은 로봇이 바닥 청소와 식당 내의 음식 배달이나 하고 있지만 양자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건널목에서 나와 같이 신호등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로봇을 예상보다 일찍 보게 될 것이다.

현대의 암호체계는 크게 비밀 열쇠 암호체계와 공개 열쇠 암호체계로 분류할 수 있다. 위에서 예를 든 바와 같이 완전히 무작위로 찾아야 하는 암호체계가 비밀 열쇠 암호체계이고, 공개 열쇠 암호체계는 소인수분해가 어렵다는 사실에 기초한 암호체계이다. 병렬처리가 효율적인 또 하나의 알고리듬이 바로 소인수분해 알고리듬이기 때문에 양자컴퓨터가 개발되면 전 세계의 암호는 모두 격파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암호를 깰 수 있으면 스위스의 은행 계좌에 든 돈을 모조리 털어올 수도 있고 외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발사 코드를 해킹하여 마음대로 발사할 수도 있다. 암호는 국방과 안보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고 우리 개인 생활에도 매우 깊숙이 침투해 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스마트폰에 암호를 넣어 깨우는 일이며 하루 종일 SNS, 온라인쇼핑, 온라인뱅킹을 하면서 암호를 넣어야 하고, 밤에는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정확히 넣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다. 암호가 깨지면 한마디로 전 세계는 마비된다.

AXA라는 보험회사는 양자컴퓨터의 해킹을 방비할 수 있는 양자내성암호를 사용하여 고객 데이터를 보호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런 회사의 데이터는 몰래 빼오기도 어렵지만 빼와도 암호가 걸려있어 읽을 수가 없다. 이런 암호를 깰 수 있는 양자컴퓨터는 빨라야 10년 후에나 개발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회사는 왜 지금부터 이런 양자내성암호를 개발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이 회사의 데이터를 빼올 수 있다면 가지고 있다가 10년 후 양자컴퓨터가 개발되면 그때 암호를 풀어 데이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회사로서는 현재 가지고 있는 고객 데이터가 10년 후에는 공개되어도 좋은 데이터라고 판단되면 상관없지만, 아니라면 지금부터 양자내성암호를 걸어두어야 하는 것이다.

양자컴퓨터는 분자 시뮬레이션도 잘한다. 신약이나 신물질을 개발한다는 것은 새로운 분자를 만드는 일인데, 우리가 목표로 하는 분자가 자연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또한 합성할 수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성질을 가질 것인지를 미리 알기 어렵다. 그래서 그동안의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원하는 성질을 가질 것이라 예상되는 분자를 설계하고 이를 시행착오를 통해 합성한 후 성질을 조사한다. 이런 시행착오는 시간이 매우 많이 걸린다. 그래서 신약을 개발할 때는 시행착오 시간을 줄이기 위해 수퍼컴퓨터를 써서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문제는 이 시뮬레이션조차 시간이 엄청나게 든다는 점이다. 양자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 원자 같은 입자들을 기술하는 데 필요한 변수의 수는 입자수를 N이라 할 때 N승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그래서 현존하는 최대의 수퍼컴퓨터로 계산할 수 있는 가장 큰 분자는 원자를 20개 정도 가진 분자이다. 이 정도의 분자를 계산하려고 해도 지구를 이루는 원자 수의 십분의 일 정도에 해당하는 수의 메모리가 필요하다고 하니 이 이상은 현실적으로 계산할 수 없다고 하겠다.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N개의 비트가 있을 때 다룰 수 있는 변수의 수가 중첩성에 의해 N승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즉 양자컴퓨터는 입자 수 증가에 따른 대상 양자계의 차원 수 증가를 자체의 병렬처리 능력으로 상쇄시켜 계산시간이 많이 늘어나지 않게 한다. 이는 양자컴퓨터 자체가 양자계이기 때문으로, 파인만이 처음 양자컴퓨터라는 개념을 생각해 낸 것은 바로 이러한 이점 때문이었다.

파이자 등의 제약회사들이 양자컴퓨터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해서 신약을 개발하고 있으며, 벤츠, 토요타, 현대차 등의 자동차 회사들은 양자컴퓨터를 이용해서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배터리는 전극이나 촉매에 따라 충전용량이나 충전속도 등이 달라진다. 새로운 전극이나 촉매를 개발하여 배터리의 효율을 2% 높일 수 있다면 다른 배터리 회사들은 모두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다.

양자컴퓨터가 잘 푸는 또 하나의 문제는 최적화문제이다. 몇 개의 지점을 방문해야 하는 외판원이 어떤 경로를 택해야 최소한의 거리를 여행하게 되는가? 라는 '여행하는 외판원 문제(traveling salesman problem)'가 대표적으로 유명한 최적화문제이다. 이 문제는 가능한 경우 수를 모두 검토해 보는 수밖에는 없는데, 양자컴퓨터는 가능한 경우 수 모두를 병렬로 동시에 검토할 수 있기에 빠르게 답을 준다. 이런 최적화문제는 공장 공정을 최적화하거나 물류를 최적화하여 에너지를 절감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게 해준다.

사실 최적화문제는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유체역학 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로서 일기예보나 기후 재난의 예측에 적용하여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다. 폭스바겐은 도시의 차량 흐름의 연구에, 에어버스는 비행기의 항공역학 풀이에 양자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또 금융산업계에서는 헤징이나 포트폴리오 최적화에 적용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의 가장 큰 단점은 오류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현재 개발된 양자컴퓨터들은 모두 CPU의 비트 수도 적고 오류 발생률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불완전한 양자컴퓨터를 사용하면 자주 틀린 답을 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푸는 게 어렵지 주어진 답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확인하기는 쉬우므로, 양자컴퓨터가 준 답을 확인해 봐서 오답이면 다시 풀게 하면 된다. 고전컴퓨터가 몇천 년 걸리는 문제를 수 분 만에 푼다면 틀려서 몇 번 다시 푼다고 해도 여전히 훨씬 빠를 것이다. 더구나 많은 경우 양자컴퓨터는 틀려도 완전히 틀린 답이 아니고 정답에 가까운 답을 준다. 양자컴퓨터가 오답을 주었을 때는 그 오답 근처의 값을 몇 개 확인해서 정답을 찾을 수도 있다.

양자컴퓨터와 고전컴퓨터의 비교

일반적으로 고전컴퓨터의 계산시간은 다루는 숫자의 자릿수 혹은 비트 수에 따라 지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양자컴퓨터의 계산시간은 천천히 늘어난다. 그래서 작은 숫자들을 다룰 때는 클라크 속도가 빠른 고전컴퓨터가 훨씬 계산에 유리하다. 그러나 자릿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림의 C점처럼 양자컴퓨터가 고전컴퓨터를 추월하는 시점이 오게 되는데, 양자컴퓨터의 계산시간이 고전컴퓨터보다 작을 때 양자 이득 혹은 양자 우월성이 있다고 말한다. 양자컴퓨터의 쓸모를 보이려면 그림의 D점과 같은 곳에서 고전컴퓨터와 양자컴퓨터를 비교하면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직은 그렇게 좋은 양자컴퓨터가 없어서 양자 우월성을 보일 수가 없다.

2021년 말에 나온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그 당시에 이미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하드웨어 회사가 60개가 넘고 양자 소프트웨어 회사는 120개가 넘으며 양자컴퓨터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10개가 넘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양자컴퓨터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회사가 40개가 넘는다고 했는데, 2024년 현재는 몇백 개는 될 것이다. 아직 양자 우월성을 보일 수 있는 실용적인 양자컴퓨터도 없는데 이 회사들은 도대체 양자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해서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이 회사들이 지금 양자컴퓨터를 이용해서 하는 일은 비트 수가 A나 B같이 작은 장난감 양자컴퓨터를 써서 계산한 후 이를 고전 컴퓨터와 비교하는 것이다. A 지점에서의 고전컴퓨터와 양자컴퓨터의 계산속도 차이가 B 지점에 가니 줄어들었다면 언젠가는 C 지점처럼 추월하는 점이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즉 양자컴퓨터를 쓰고 있는 회사들은 양자 이득의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중이며, 양자 이득을 보일 수 있는 강력한 양자컴퓨터가 나왔을 때 사용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중이다. 아직 실용적인 양자컴퓨터도 존재하지 않는데 왜 이렇게 미리 설레발들을 치나 싶지만, 실용적 양자컴퓨터가 나오고 나서 개발을 시작하면 그때는 이미 경쟁에 뒤처질 것이다.

그렇다면 C점에 도달하는 시기가 언제 올 것이냐가 가장 큰 관심사가 되겠다. 이 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전망이 크게 엇갈린다. 가장 비관적인 사람은 양자컴퓨터가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오류가 전혀 없는 양자컴퓨터란 이론상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낙관적인 사람은 2025년 정도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런 전망을 하는 사람들은 짐작할 수 있듯이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회사 사람들이다. 전문가들의 평균적인 전망은 10년 후인 2035년 정도이다.

양자컴퓨터는 미래 산업의 게임체인저라고 불린다. 양자컴퓨터를 알고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주어지고, 모르고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는 위기가 닥친다. 양자컴퓨터가 가져올 혜택이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으면 윤리적인 문제도 많이 생기게 되므로 규약과 표준화도 지금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양자컴퓨터 같은 공상과학은 스크린에서나 보아야 하는 것인데 내 주변에 공존하고 있으면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양자컴퓨터를 알 필요가 있다.

용어설명
  • 1)NMR: 핵자기 공명(Nnuclear Magnetic Resonance)은 자기장 속에 놓인 원자핵이 특정 주파수의 전자기파와 공명하는 현상이다. 핵자기 공명은 분자의 물리·화학·전기적 성질을 알아내기 위한 분자 분광법의 일종으로 사용되고, 또한 의학에서 인체 내의 조직을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관찰하기 위해 사용되며, 미래의 양자 컴퓨터의 개발 과정에도 사용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패밀리 사이트